자유시민의 각성과 조직화 |
우리는 문명의 변곡점에 살고 있다. 미국에 의한 중국 제압 및 북한 해방이 숨가쁘게 진행되고 있다. 이는 현대문명(modernity)이 질적으로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진입하고 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미중전쟁은 중국이 지난 10여년 동안 G2로 몸집을 급격히 불리면서, ‘국력 전체를 동원한 전체주의 반동(all-of-state totalitarian reaction)’으로 치달았기 때문에 일어났다. 안으로는 국민 전체를 ‘중화패권주의’(中國夢)로 세뇌하면서 신장, 티벳, 홍콩, 종교, 노동, 환경에 관한 자유와 인권을 짓밟았을 뿐 아니라 사회 전체를 조지 오웰(George Orwell)의 동물농장(Orwellian system)으로 몰고 갔다. 밖으로는 북한, 이란, 베네수엘라 등 반(反)인류 체제(anti-humanity regime)들을 보호 육성하는 한편, 한반도에 친중반미 코리아연방의 등장을 겨냥하고, 서해를 내해(內海)로 장악하고, 동해의 절반을 사실상의 영해로 만들고자 획책했으며, 미국과 한국의 정치권, 학계, 언론계에 집요한 ‘친중파 육성 공작’을 벌여왔다. 또한 경제에 관해서는 공공연하게 지적재산권을 훔치고, 외국인 투자(FDI) 기업의 영업비밀과 경영권을 강탈하려 시도해 왔다. 더 나아가 14억 중국인을 바보로 만들기 위해, 구글검색, G-mail, 유튜브, 페이스북, 트위터 등 지구촌 네티즌들과의 소통을 차단하고 이들을 인터넷 검열 감옥—만리방화성(萬里防火城, Great Firewall) 속에 가두었다.
이 같은 참담한 상태가 초래된 근본 원인은, 특권적 과두지배층(privileged oligarchical class)을 이루는 공산당 및 인민해방군의 고위층이 수출 주도 경제를 위해서, 환율을 조작하고 노동-환경 인권을 유린하는 한편, 내륙 출신 해안지역 거주 노동자(農工)를 사실상 ‘불법 체류 외국인 노동자’(불체외노자)로 만들고 내륙 지역을 의도적으로 낙후시켜 온 내부식민지(internal colony) 시스템에 있다. 중국 공산당과 인민해방군이야말로, ‘개방에 편승해서 다수 중국인을 식민지 백성으로 지배해 온 세력’에 다름 아니다.
이 같은 중국의 전체주의 반동에 대해, 한편으로는 개인관점 소통(유튜브, SNS, HTML5, 인터넷TV, 5G)의 발전에 의한 정신의 성숙, 다른 한편으로는 셰일혁명의 완성에 의한 세계에너지안보질서의 확립으로 국력이 급격히 강화된 미국이 2018년부터 전쟁 아닌 전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이것이 바로 지금 전개되고 있는 미중전쟁의 본질이다. 단순히 미국과 중국 두 나라 사이의 패권 전쟁이 아니라, 인류-현대문명-세계질서를 이끌어야 할 가치와 원칙을 둘러싼 건곤일척의 아마겟돈이다.
이 위대한 전쟁의 결판은 이미 정해져 있다. 중국이 현대문명의 보편적 정치 원칙—자유민주주의, 공정시장, 개인존엄성—을 몸에 익히는 순치(馴致) 대변화가 일어날 수 밖에 없다.
북한은 중국의 위성 국가(vassal state)에 지나지 않으며, 북의 핵과 미사일 도발은 중국의 묵인 내지 방조 아래 이루어진 반(反)인류 범죄일 뿐이다. 북한이 해방되면 남쪽의 종북친북이 무력화될 수밖에 없듯, 중국이 무력화되어 가면 미국이 북한을 접수 평정할 수밖에 없다. 본사(本社)가 망하면 지사(支社)도 망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그래서 우리 한국인은 거대한 축복 물결을 맞이하고 있다. 미국에서 위대한 정신혁명이 진행되고, 중국이 자유화되고, 북한 주민이 해방되어 인간으로 부활하는 아마겟돈 드라마는 앞으로 수십년 동안 지속되면서 한국인에게 엄청난 축복 세례를 쏟아 부어 줄 것이다. 일찍이 6.25 남침을 이겨내고 본능적인 반공 의식으로 강력히 무장 됐던 일에 대해 남들은 ‘전쟁 시련을 통한 축복’(Baptism by fire)이라 불렀다. 지금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일은 ‘아마겟돈을 통한 축복’(Baptism by Armageddon)이라 불리워야 마땅하다.
우리는 이 축복 물결 속에 무엇을 성취해야 하는 것일까? 문재인 586 집단의 유사전체주의(quasi-totalitarianism) 폭정을 끝장내는 것은 오히려 쉽다. 핵심은 정신의 정립이요 유권자의 조직화다.
5천만 한국인은 국민소득 3만달러 수준의 물질 풍요를 누리고 있지만 우리의 자유시민의식은 아직 걸음마 단계에 머물고 있다. 탄핵 난동 이후에야 우리의 정신은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탄핵난동 자체가 우리 사회의 지도층, 지식층이 얼마나 엉터리인지 보여준다. 또한 그 같은 수준의 지도층, 지식층 밖에 길러내지 못 해왔다라는 우리 자신의 한계를 보여준다. 탄핵 난동이 벌어졌던 것은, 이른바 ‘깡통 진보’의 반란 때문이 아니라, 조중동 제도권 빅 미디어에 의한 인격살인과, 집권당 거물 정치인들의 사냥개 놀음과, 헌법재판관, 판사, 검사 등 법조계가 자행한 인민재판 덕분이었다. 탄핵 난동은 제도권 상류층의 자살소동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제도권 상류층을 그 지경으로 방치해 온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이다. 아파트 평수, 통장 금액, 자동차 모델, 자녀 학벌에만 몰두해서 오직 물질과 풍요만 좇아서 살아 온 우리의 행태가, 제도권 상류층의 타락을 막지 못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정신적 후진성, 미숙성은 우리 자신만의 책임은 아니다. ‘현대문명을 감당해 나갈 수 있는 정신은 무엇이며 어떤 상태에 있는가?’—이 같은 인류 차원, 세계 차원의 배경이 존재한다.
돌이켜 보면 현대문명을 떠받치는 정신의 샘물은 50여년 전인 1960년대 후반부터 크게 오염됐다. 그 정신의 샘물을 주도하는 미국과 서유럽이 해체—디컨스트럭션(Deconstruction) 쓰나미에 휩쓸리기 시작했다. 선과 악, 옳고 그름, 아름다움과 추함 등에 관한 일체의 구분을 ‘유치 찬란 한 편견’이라 낙인 찍어 폐기처분하는 풍조가 바로 해체 쓰나미다. 가족, 섹스, 동성애 등 인류의 생물학적 번영과 관련된 기준마저 ‘젠더(gender)에 관한 편견’으로 몰아붙여 파괴하는 흐름이 바로 해체 쓰나미다. 이 무시무시한 오염 현상이 1960년대 후반부터 최근까지 미국과 서유럽을 지배해 왔다. 따라서 거기에서 새로운 지식과 사고방식을 흡수한 한국의 지식층 역시 근본 사고방식부터 삐뚤어질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한국의 경우, 중국과의 경제결합이 깊어지면서, 또한 중국의 집요한 언론-학계-정치계 공작이 진행되면서, 중국의 공산당 주도 국가자본주의 체제를 찬양하는 친중파 흐름이 덮쳤다. 뿐만 아니라 “전쟁하기 싫지? 그러면 북한을 교류 협력의 파트너로 인정하고 도와 줘야지?”—이 같은 친북공작 세뇌가 한국인의 뇌수를 장악했다.
미국과 서유럽에서 배워온 바탕이 해체 쓰나미에 의해 오염된 정신이고, 그 위에 친중 사대주의가 덧씌워지고, 다시 그 전체가 전쟁이냐 평화냐, 친북세뇌에 의해 물들여 졌다. 이게 지난 30년 동안 한국인을 지배해온 참혹한 정신 지평이다.
그러나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제 이 모든 것이 바뀌고 있다. 첫째, 미국에서 위대한 정신혁명이 일어나고 있다. 지난 50년 동안 미국 사회를 지배해온 해체 오염을 걷어내고 강인하고 순박한 가치를 지향하는 문화혁명이 점점 더 본격화되고 있다. 둘째, 미국이 OPEC을 섬기고 중국을 키워줘 왔던, 지난 50년 간의 세계전략이 완전히 바뀌어서, 이제 자유민주주의, 공정시장, 개인존엄성이 인류 보편의 정치원칙으로 매일 매일 강화되어 가고 있다. 셋째, 중국의 전체주의 반동(totalitarian reaction), 북한의 전체주의 사교(totalitarian cult), 한국의 유사 전체주의(quasi totalitarianism)를 부숴버리는 아마겟돈이 진행되고 있다.
이제 우리 자유시민이 매일 매일 유튜브에서 혹은 SNS에서 올바른 지식정보, 올바른 정치사상을 배우고 익히는 양속(良俗, mores)을 익혀야 한다. 자유시민답게 느끼고 생각하는 것을 학습해야 한다. 이 같은 행태는 필연적으로 자유시민의 조직화, 즉 유권자의 조직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학습은 조직을 잉태하고 조직은 학습을 강화시키기 때문이다.
첫째, 자유시민으로서의 관점과 사상을 공유하여 이를 매일 매일 강화시켜 가며, 둘째, 조직에 소정의 월 회비를 성실히 납부하며, 셋째, 마실 다니듯 오프라인 미팅에 참여해서 힘을 모으는 사람들이, 한 선거구에 평균 2백명 씩 결집하면 대한민국 정치판이 뒤집어진다. 그래봐야 전국 5만명이다. 우리가 충분히 달성할 수 있는 목표다.
학습, 회비, 미팅—이 셋이 우리의 실천 전술이다. 이선본과 자유시민본부 두 자매조직의 사명은 바로 이 같은 삼박자 실천을 추구하는 자유시민의 존재—그 자체이다. 자유시민의 각성과 조직화를 위한 플랫폼—이것이 바로 이선본과 자유시민본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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